이 뉴스레터가 발송되는 날 아침이 노동절이고 제가 오늘 <시몬느 베이유의 노동일기>를 소개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연입니다. 지난 4월 30일부로 4년여를 일한 직장에서 퇴사하고 오늘 뉴스레터를 발송하는 것도 신기하게 겹친 우연이고요. 봄이 시작되기 직전, 퇴사를 결정하고 업무를 마무리하며 보냈던 지난 몇 주간은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심란했고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 시간에 제가 붙들고 있던 책이 바로 <시몬느 베이유 노동일기>입니다. 소위 지식인이었던 베유는 사회주의 ‘이론’만 공부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어 스스로 공장에 들어가 공장 노동자가 됩니다. 이 책에는, 1934년 12월에 공장에 들어가 단압기 작업과 지렛대 작업을 하고, 하루에 몇 개의 핀을 만들었는지, 일당을 얼마 받았는지, 작업반장과 동료 노동자들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세세히 기록한 베유의 노동일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노동에 관한 철학적 고찰이 담긴 글 ‘노동자의 뿌리 뽑힘’, ‘억압의 분석’도 실려 있고요.
노동일지를 읽다 보면 9개월간 베유가 겪은 노동 현실과 그 과정에서 노동과 인간을 바라보는 베유의 관점이 어떻게 변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공장 생활 초기에는 용광로 작업을 하면서 동료들과 우애를 느끼기도 하지만 7주가 지난 후에는 이렇게 쓰거든요.
“나는 너무도 지쳐 버려서 내가 공장에 머무르는 진정한 이유를 잊어버렸으며, 공장 생활의 가장 강력한 유혹, 즉 공장 생활로 인해 고통받지 않을 수 있는 전적으로 유일한 수단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겠다’는 유혹을 거의 극복할 수 없게 되었다. 추억과 단편적 사고가 떠오르며 나도 역시 생각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는 오직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뿐이다. 나를 사로잡고 있는 공포감이 외부 환경에 대한 나의 종속 상태를 증명해 주는 것이다.” (49쪽)
천하의 시몬 베유도 공장 노동자로 일할 때는,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만 생각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점에 위안을 느껴도 될까요? (아니, 나는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도 생각하는 존재가 되지 못한 것 같아;) 그는 이런 종속 상황이 지속되면 “순종하는 짐바리 짐승”이 되어버릴 것을 우려하며 결국 이 모든 감정조차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으로 예견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한 노동자의 영혼의 구제란 우선 체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라는 말까지 하는 걸 보니, 약 100년 후에 한 노동자가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도 예견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웃음이 나기도 했답니다.
“또 노동자가 가장 피로해지는 것은 눈곱만큼의 임금을 받게 되는 일을 할 경우이다.”라는 문장을 읽으면서는 최저 시급에서 서울형 생활임금을 받게 되어 그동안 느꼈던 업무 스트레스가 많이 사라졌다고 고백했던 책 모임의 한 동료가 생각나기도 했어요. 그 밖에도 “이 공장이 감옥이나 다름없으며 대부분의 여공들이 그곳에서 일하는 도중 화가 치밀어도 꾹 참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문장에서는 퇴근길 제 모습이 떠올랐고요.
‘주목할 만한 사항’이라고 적어놓고 “성(性)차별,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경멸, 서로 간에 음란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도 남성에 대한 여성들의 겸손은 다른 곳보다 특히 노동자 세계에서 훨씬 더 심하다.”라고 적은 부분에서는 그 ‘여성들의 겸손(!)’을 지금도 목격할 수 있다는 점에 씁쓸해졌어요.
베유는 제련공으로 일할 때 “1시간에 400개밖에 못 만들었다고? 800개는 만들어야 해”라고 나직하게 말하며 압박하는 작업반장 앞에서 “매 순간 사람을 마비시키는 이 혐오감과 불쾌감을 이겨 나가자”라며 (아마도 이를 악물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피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고, 이따금씩 고통스럽기조차 해서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은 피로.” (116쪽)
“공포, 하루 중에 잠시라도 불안으로 가슴을 죄지 않는 순간은 거의 없다. ” (117쪽)
“노동자는 타인의 임의(任意)에 맡겨진 일개 사물일 뿐이다. …출근부에 자신의 영혼을 맡겨 놓았다가 퇴근할 때 다시 찾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노동자는 영혼을 작업장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줄곧 영혼을 침묵시켜야 한다. 퇴근할 때는 자기 영혼을 되찾지 못한다. 너무 피곤하기 때문이다. 설혹 영혼을 되찾는다 해도 하루 종일 여덟 시간이나 일을 했고 내일, 모레, 그리고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 (118쪽)
고작(?!) 9개월 동안 공장 생활을 경험한 베유지만, 역시 천재(!)답게 그는 노동자가 느끼는 밑바닥의 감정 상태를 낱낱이 해부합니다. 줄곧 영혼을 침묵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는 가차 없는 그 진실을요.
주말에 설혹 영혼을 되찾는다 해도 내일, 모레, 그리고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 속에 허우적대다 잠깐의 휴식을 얻은 지금의 저는, 잠깐 그 고통에서 비켜 서 있네요. 하지만 50개월 근무 중 마지막 몇 주간 베유가 하나하나 호명한 성차별, 혐오감, 불쾌감, 피로, 공포를 골고루 느끼며 이 책을 붙들고 있었어요. 괴로워서 베유를 찾아갔는데 제가 원하던 위로와 평화는 없었고, 오히려 이런 원망이 들었죠. 시몬 언니... 이렇게 현실을 차갑게 직시하게만 만들고 끝낼 참인가요?
“또 일요일 밤, 하루가 아니고 1주일의 일이 머리에 떠오르면 미래는 너무도 음울하고 견디기 힘든 것이 되며 사고는 이 무게에 깔려버리고 마는 것이다.”(132)
이제 그만~! 정말 가차 없는 분. 베유는 노동 현장에서 인간 내면과 현실 삶을 면밀하게 들여보다가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본업 철학자이심).
“사물이 인간의 역할을 하고 인간이 사물의 역할을 하는 것이야말로 악의 근원이다.”(135쪽)
여기서 그는 이후 기독교 신비주의자가 되어 발전시킬 사상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것만 같아요.
“중력과 비교될 수 있는 거의 저항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바로 옆에서 괴로워하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가 얽매어있는 제도처럼 냉담하고 냉혹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1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