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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붙들고 있는 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죽었습니다. 이 글의 첫 문장을 ‘수원 세 모녀’의 죽음으로 시작했었는데, 그 첫 문장은 오래 가지 못했어요. 신당역에서 또 다른 여성이 살해당했기 때문이죠. 잠 못 이루는 밤들이 많아졌습니다. 무서웠고, 참담했습니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기가. 그 공포와 참담함을 안고 읽어나가던 책이 최기숙 선생님의 <계류자들>이었습니다. 십여 년 전 같은 저자의 또 다른 저서인 <처녀귀신>을 읽고, 죽어서야만 목소리를 가질 수 있었던 조선의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거나, 강간당하고 죽임당한 조선의 여인들은 ‘처녀귀신’이라는 존재로 다시 나타나 자기 목소리를 냈습니다. 나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보라고, 이렇게 억울하게 죽은 내 한을 풀어달라고. 그들은 자신들이 살던 당대의 사회정의를 되묻기 위해 현실로 돌아온 존재들이었죠. 이들을 오늘의 우리에게 생생하게 데려와 ‘처녀귀신’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 최기숙 선생님의 연구 분야는 고전문학과 한국학, 젠더와 감성입니다. 이 네 연구 분야를 횡단하며 창의적 연구물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연구자, 최기숙. 십여 년이 지나, 그 연구자를 타고 21세기 아시아 귀신들이 돌아왔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현실에 관여하는 '계류자(繫留者)'로요. ‘계류자’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걸려 있는 사람’입니다. 21세기에 아시아 귀신들은 “전문성과 개성을 갖춘 능력자”가 되어 정주할 임계지를 구축해내고, 인간과 교섭하며, 우리 사회의 윤리를 묻는 존재로 자리잡습니다. 저자는 그 다채로운 실천을 수행하는 귀신들을 동시대 문화콘텐츠에서 발견해내죠. 이 책은 웹툰과 영화, 드라마와 고전문학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그들을 발견하는 작업입니다. 책에 언급된 많은 작품 중, 가장 친근하게 느껴졌던 작품은 강풀의 웹툰 <조명가게>와 드라마 <호텔 델루나>였습니다. ‘조명가게’와 ‘호텔 델루나’는 우리 시대 귀신들이 정주하던 임계지였어요. 그 생사의 접경에서 우리 사회의 “상처, 폭력, 트라우마, 질투, 악연”을 안고 존재하는 귀신들은, 선택하고, 의지를 발휘하고, 복수합니다. 그리고 독자와 시청자에게 묻습니다. 내가 귀신이 되어 이곳에 떠돌고 있는 사회적 맥락을 너는 알고 있느냐고.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어떤 사회인 것이냐고. 저는 다시 수원 세 모녀와 신당역의 역무원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생사의 경계를 완전히 넘어가 다른 세계에 안착했을까요? 아니면,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임계지를 구축해 “이 세상의 불편부당함과 외면, 방치 속에 억류된 계류자”에서 “정의적 공감 속에 해방의 주인이 되어 자유와 평화의 증인”으로 새롭게 될 날을 위해 적극적으로 교섭하고 있을까요?
“보는 행위는 삶을 바꿀 수 있다.
눈을 마주친 사람은 서로를 결코 외면할 수 없다.”(16쪽)
이 문장에 굵게 밑줄 그으며,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말 걸어올 때 그들과 두려움 없이 눈 마주쳐 보려고 합니다. 보는 행위가 삶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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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권정생, 산하어린이, 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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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서늘해지고 단풍이 붉게 물들 이맘 때쯤, 생각나는 어린이책이 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이 책에는, 땅 위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걱정되어 아들 예수와 이 땅에 내려와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보려고 결심한 하느님이 나옵니다. 원래는 예수가 한 번 내려와본 적이 있던 이스라엘로 내려오려고 했는데, 거센 바람이 불어 무력하게 대한민국 윤서방네 수박밭에 떨어진 하느님과 예수님. 밭일을 해서 “서울가는 버스삯”을 벌고, 서울에서는 예수가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청소부로 취직해 변두리 마을 철거촌에 머물게 됩니다. 철거촌에서 실향민인 과천댁 할머니를 만나는가 하면, 고아 소녀 공주를 만나기도 하죠. 철거민 마을에서 철거반 아저씨들에게 쫓겨난 후에는 넷이 강변에 움막집을 짓고 가족처럼 지냅니다. 리어카 과일 장사를 해 셋방살이로 집을 얻기 전까지. 1990년대에 이른바 ‘유사 가족’을 이루고 투닥투닥 정을 나누며 사는 하느님 할아버지, 과천댁 할머니, 예수 총각, 공주 어린이. 세상사에 서툰 하느님 할아버지는 셋방에 살며 고된 인생살이에 시름시름 앓기도 하고, 과일 노점상을 하던 예수 총각은 노점 단속반에 쫓겨 유치장에 갇히기도 하죠.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몸소 겪기도 하고, 셋방살이하는 가난한 쌍둥이 삼형제가 방에서 질식해 죽은 소식을 들으며 연신 눈물을 흘리기도 하던 하느님과 예수 부자는 잠시 세상을 끝장내 버릴까 고민하기도 합니다. 세상 속에서 신음하며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애끓는 사랑 때문이었죠. 그래도 차마 세상의 악을 쓸어버리지 못하고, 끝내 이 세상에 더 머물러 있기로 정하는 하느님과 예수님. 통일될 때까지만 참고 여기에 있자고 다짐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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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원 선생님의 사랑스러운 삽화가 담긴 이 작은 어린이책은, 그 사랑스러운 겉모습과 다르게 차가운 리얼리티를 품고 있습니다. 서울의 변두리 마을에서 가난과 소외, 배제와 절망을 두루 경험하는 하느님과 예수님의 삶은, 1990년대에 제대로 된 집 한 칸 갖지 못하고, 철거촌 천막과 강변의 움막에서 이리저리 유랑하는 빈민의 삶을 보여줍니다. 실향민 과천댁 할머니를 통해서는 가족과 이별한 채 외롭게 살아가는 실향민의 아픔을, 어린 고아 소녀 공주와 빈집에서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은 어린 봉식이를 통해서는 돌봄 받지 못하던 어린이들의 존재를 드러내 보여주고요.
이 가차 없는 현실 묘사가 저학년 어린이책에 실려 있다니! 좀 믿기 어려우시죠? 그런데 이 냉엄한 현실을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게 재미있게 그러나 정직하게 그려내는 게 바로 권정생 선생님의 탁월함입니다. 어린이들도 세상의 어두움을 알아야 한다고 믿었던 권정생 선생님의 신념은 작품 곳곳에 배어 있답니다. 외롭고 차가운 회색 도시에 낙엽까지 떨어져 분위기가 온통 스산해지면, 하느님과 예수님, 과천댁 할머니와 공주가 ‘단풍놀이’ 가는 부분을 찾아 읽곤 하는데요. 이토록 고단한 삶을 살던 그들이 어렵게 시간을 내어 단풍놀이를 떠나 김밥도 나눠 먹고 가족사진(?)도 찍고 밤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장면이 눈부시게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피로한 삶 가운데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서로를 보듬고 즐거움을 나누는 그들을 보면, 저도 마음 한구석의 여유와 다정함을 잃지 않고 싶어집니다. 많은 순간, 높아진 마음으로 내 삶의 윤택함만 돌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그때, 우리 시대의 어둡고 소외된 변두리에 내려와 몸소 가난한 삶을 산 이야기 속 하느님과 예수님을 떠올립니다. 아직 통일이 되지 않은 이 한국 땅 어딘가에서 하느님은 공주와 떡볶이를 먹고, 예수님은 과천댁 할머니와 리어카를 밀고 다니며 성실히 과일을 팔고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요. 그러면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아갈 힘이 조-금 솟아나곤 합니다. 좀더 관대한 마음으로 제 주변의 이웃들을 돌아볼 여유와 함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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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월호 탐구
월간 <인물과 사상>, 인물과 사상사, 2002년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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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성총리가 탄생한 해는 2006년이란 걸 혹시 아시나요? 첫 여성총리는 한명숙 총리였죠. 그런데 그보다 4년 앞서 첫 여성총리가 될 뻔한 인물이 있었어요. 바로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입니다. 김대중 정권 말기에 일종의 히든카드처럼 등장한 헌정사상 첫 여성총리 인사는 총리 후보자 개인의 자질과 도덕성이 문제시되며 실패하지만요. 이때 장상이 첫 여성총리가 되었느냐 아니냐의 문제보다 더 타올랐던 건 여성 정치인 이슈였어요. 당시 한국여성의전화연합에서는 ‘장상 국무총리(서리)의 임명을 적극 환영한다’는 성명을 냈어요.
‘오늘 신임 국무총리(서리)로 장상씨가 지명된 것에 대해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은 전국 25개 지부의 회원들과 함께 이를 적극 환영하는 바이다. 한국 역사상 여성총리의 등장은 여성의 정치적 역량과 대표성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신선한 인사로 이를 높이 평가한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은 장상 총리(서리)가 기존의 부패한 한국정치를 여성특유의 객관성과 공정성, 청렴함과 투명성으로 잘 헤쳐나갈 것을 기대한다. 또한 양성평등적 관점과 정책을 국정 전반에 반영시켜 여성의 능력이 최대한 활용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하는 바이다. 특히 성매매 등 아직도 심각한 수준에 있는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 그리고 성차별적 제도와 관행을 없앨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여성의 고위직 임명과 정치적 진출이 더욱 확대되어 우리 사회의 성평등과 민주주의가 앞당겨질 수 있기를 고대한다.’_2002년 7월 11일
여성계가 이 인사에 어떤 기대감을 품고 있었는지 조금 알 수 있는 성명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탐구할 과월호는 <월간 인물과 사상> 2002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는 슬로건으로 유명한 이 월간지에 당시 민주노동당 여성위원장이셨던 최현숙 님이 쓴 ‘이 땅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거세되는가?’라는 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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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현재 구술생애사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최현숙 작가의 민노당 시절 글이라는 점에마음을 빼앗겼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한국 정치사에서 여성을 대표하는 정치인의 부재로 고민하는 20년 전 작가의 고민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적어도 성평등의 주제에 한해, 진보정당 내의 남성 동지들보다 보수정당 내의 여성 동지들에게서 동지로서의 연대를 더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연대감의 공개적 표현은 왜곡, 인용되면서 ‘보수’와 ‘우편향’으로 난도질당하거나, 적어도 방어되지 않는다.” 정치적 입장차에도 불구하고, 여성 동지들에게 더 연대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당시 현실은 여성 지방의원이 겨우 3.2%, 여성 국회의원은 불과 5.9%였던 열악한 상황이었죠. 필자가 “적어도 정치 영역에서는 ‘권력이 있는 곳에 여성은 없다.’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그래서 허물 많고 수구적 사회의식을 가진 장상이나 혹은 심지어 박근혜라도 권력의 자리에 가야 하는지 여성들은 예민하게 저울질해야 한다고 제안하죠. 당시 민주노동당조차 국회의원 재선거에 여성 후보를 한 명도 내지 못했고, 지구당 후보 경선에 출마한 여성 한 명은 탈락한 상태였으니까요. 당이 낸 남성 후보를 유세하며 같은 진보 계열인 사회당 여성 후보 유세단과 맞부닥칠 때 필자는 생각합니다. “합당을 논해야 하나? 혹은 ‘여성당’을 논해야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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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성당’을 논해야 하나?”라는 질문으로 끝맺는 이 20년 전 글을 읽고, 해산 절차를 밟고 있는 오늘의 ‘여성의 당’을 생각했습니다. 첫 여성총리 카드를 꺼내 들었던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1월 29일 탄생한 당시 여성부 지금의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오늘의 정부를 생각했습니다 (초대 여성부 장관은 바로 한명숙 장관!). 최현숙 작가가 저 글을 쓴 후 20년 사이, 현재 21대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가 되었고 (여전히 전 세계 평균 여성 비율인 25.6%에는 못 미치지만), 여성총리를 넘어 여성대통령을 경험하기도 했고 (그 대통령이 여성을 대표하는 정치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는 여성 정치인을 다수 떠올릴 수도 있는 2022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 저 글 ‘이 땅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거세되는가?’라는 제목을 다시 떠올리게 됐으니, 2022년의 여성들은 어디에 좌표를 찍고 다시 움직여야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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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뉴스레터를 읽고 든 생각을
자유롭게 나눠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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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큐레이터 에밀이 고심해서 고른 한 권의 책을 정성껏 포장해 보내드립니다. 그날의 느낌과 생각에 따라 주제를 골라보세요. 선물용으로도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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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그 이야기를 나누고 그에 걸맞은 책 처방이 필요하세요? 독서 생활 30년차 책방 북큐레이션 경력 5년차 에밀이 책을 추천하고, 그 이유를 정성스레 적어드립니다. 책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으시다면 선물 받는 분의 이야기를 적어주셔도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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