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책 독서 모임>, 박동수, 민음사,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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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겨울부터 한 청년 공동체에서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5일 근무하고 이틀 쉬는 사이클에서 격주로 휴일의 하루를 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몇 텀째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모임에서 만난 은둔형 외톨이 친구들의 반짝임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글은 참신했고, 솔직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졌고요.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서는 결코 알지 못했을 우리 사회의 어떤 모습들을 마주하며, 제 사유 또한 깊어졌습니다. 그들이 제게 준 선물이죠.
텀이 바뀔 때마다 멤버들은 달라지지만, 공동체 졸업 후에도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고, 최근에 합류한 친구들도 있어, 각 멤버와 제가 맺고 있는 관계성은 다양합니다. 다만, 우리 사이에 한 가지 공유하고 있는 정서가 있다면, 서로에 대한 편견과 판단 없이 서로의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내 마음의 공간에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이죠.
이번 2022년 하반기에는 이들과 함께 『철학책 독서 모임』(박동수, 민음사, 2022)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매주 주제를 정해 각자 자기 글을 써오고 모임에서 그 글을 나누는 형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다른 형식으로 모임을 운영하기로 한 것입니다. 한 권의 책을 정해 2주에 한 챕터를 읽고, 그 챕터를 요약한 후, 거기서 발견한 것들을 정리하고, 질문을 정리해오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십여 명으로 시작한 인원이 연말로 가면서 점차 조촐해지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은 202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살며 자기 모습과 사회를 이해하고 싶은 우리에게 지적이면서도 따뜻한 안내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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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라는 커다란 책’과 씨름하는 오늘의 철학책들은 언제나 하나의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고발하기 이전에 나 자신 그리고 우리 자신을 더 좋은 방향으로 변형하기 위한 것이다. 출발점은 철학책을 읽는 ‘행위자 자신의 변형’이다. 이는 무엇보다 철학책을 촉매로 삼아 자신의 사유를 시작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철학책이 다른 학문 분과의 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지식 습득만을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_‘들어가며’ 중 일부, 22쪽
철학책 편집자인 저자는, 동료 편집자들과 함께 진행한 ‘철학책 독서 모임’에서 읽은 책들을 소개하며, ‘독서 모임’이라는 만남 구역에서 일어난 지적 화학 작용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우리 또한 ‘글쓰기 모임’이라는 만남 구역에서 이 책을 함께 읽어서인지, 우리에게 여러모로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영원하고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는 철학이 아닌 역사의 바로 이 순간 ‘오늘의 우리’가 누구인지 자문하는 동시대 철학서를 안내해주는 친절함은 우리의 지성을 자극했고, 상대의 영향력에 열려있고자 한 그들의 태도는 우리의 태도를 점검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제가 글쓰기 모임에서 이 책을 함께 읽고 싶었던 마음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어떤 엇나간 감정, 부적응의 경험, 매일 밤의 고민들이 사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거나 역사적 맥락을 가진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 그 맥락을 읽어내는 시야를 가졌을 때 좀 더 자유롭게 이웃과 사회와 관계 맺는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마음.
지금 함께, 절반 정도 책을 읽어나가며 제 의도는 그다지 구현되고 있지 않지만, 한두 가지 정도는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동시대의 누군가는 인간과 사회를 붙들고 ‘오늘의 정치와 윤리’를 성실히 정리하고 있다는 것, 그들의 고민을 받아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에서 책을 만들고 담론을 만드는 또 다른 진지한 이들이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 또한 ‘지금, 여기’에서 좀 더 고민하며 나의 정치적 입장을 세워보고 윤리적 실천을 해보고 싶어졌다는 것. 여기서 소개한 동시대 철학자들의 고퀄의 사유를 맛보고 싶어졌다는 것.
이 작은 책은 그렇게 우리 모임에 들어왔습니다. 아, 덧붙이자면, 한 손에 잡히는 이 빨간 책은 ‘민음사 탐구 시리즈’ 1권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보는 새로운 세대의 시각, 공부와 삶을 잇는 인문 시리즈 ‘탐구’는 “오늘날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성과를 한눈에 보는 기획”이자, “서양 학문 의존에서 벗어나 동료 학자와 또래 저자를 참조하고, 어려운 이론은 가까운 사례를 통해 풀어서 설명”하는 시리즈라는 설명이 붙어 있어요. 저는 이 시리즈의 출현이 참 반갑습니다. 우리 문화, 우리 감수성과 거리가 있는 서양 학문이 아닌, 오늘의 학자와 저자가 풀어내는 오늘의 문제를 이 정도의 깊이로 마주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인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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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기쁨
<플레이 볼>, 한겨레아이들,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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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2일 토요일, 프로배구 시즌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남자배구의 오랜 팬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한 교회 친구가 한 대학 배구부의 찐팬이었어요. 그때는 누구나 그렇듯, 친구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잖아요? 저도 그 친구와 같이 놀면서 배구팬이 되었죠. 친구는 대학교 체육관이나 잠실 학생체육관을 다니며 배구 경기를 보러 다녔지만, 집과 학원만 오가던 모범생은 그런 일탈(?)을 생각하지 못했다죠. 그래서 그 모범생은 멀리서 좋아하기만 하던 그 배구부가 있던 대학에 입학했답니다. (이게 바로 성덕?)
정작 대학에 입학하고서는 다른 일들에 정신이 팔리기도 했고, 막상 학교 운동장 혹은 건물 사이에서 츄리닝 입고 돌아다니는 선수들의 모습이 별것 없어서 금방 관심이 식어버렸습니다. 그렇게 긴 세월 배구를 잊어버리고 살다가 2015년 봄, 우연히 TV에서 삼성화재와 OK저축은행의 챔피언 결정전을 보게 되었어요. 당시 남자배구는 몇 년간 삼성화재의 독주가 이루어지던 때였어요. 한 팀이 7회 연속 우승하니, 그런 판이 재미있었겠어요?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높아, 팀 전체가 비싼 외국인 선수 한 명만 데려오면 우승이 이루어지던 시기였으니까요. 그냥 한 명의 영웅(!)이 우승을 만들어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판도에서 창단한 지 갓 2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팀이 우승하는 장면을 본 것이죠! 바로 그 2014-15시즌, 지금 제가 응원하고 있는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는 V-리그 출범 이후 최초로 포스트시즌에 탈락하며 암흑기에 접어들었고, 구단은 기존 감독을 교체하기로 합니다. 그러면서 당시 팀 소속 선수였던 세터 최태웅에게 신임 감독직을 맡기죠. 코치 생활도 거치지 않은 선수를 감독으로 결정한 건, 실로 파격이었습니다.
당시 구단주였던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정태영 부회장은, 3년 동안 우승하지 않아도 되니 현대캐피탈만의 팀 컬러를 만들어달라고 하였는데... 선수 은퇴식도 하지 않은 상태였던 이 신임 감독은 그만 그 해에 정규리그 우승을 일궈냅니다. 아쉽게도 챔피언 결정전에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요. 그 기적과 같았던 2014-15시즌의 6개월을 함께 하며, 저는 한국 배구의 신기원을 접했(다고 하면 좀 오바지만)습니다. 최태웅 감독이 감독 첫해에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결과를 냈기 때문만이 아니라, 바로 배구의 진짜 재미인 팀워크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일명 ‘몰빵’ 배구를 일삼아 한국 남자배구의 수준을 하향화한 팀들의 정반대 지점에서 새롭고 세계적 흐름에 걸맞은 업-템포 배구를 선보인 거예요. 이 부분도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제게 A4 10장 정도는 필요하므로, 각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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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10월에 읽은 어린이책은 이현 작가의 <플레이볼>입니다. 우리 시대의 어린이책 작가는 스포츠라는 소재로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궁금했거든요. 거기에다가 제가 참 좋아하면서 믿고 읽는 이현 작가라면 어떤 이야기를 쓸지 더 궁금했죠. (이현 작가 이야기는 다음에 발행할 뉴스레터에서 좀 더 다룰 예정입니다.) 이현 작가는 부산 출신답게(!) 부산의 한 초등학교 야구부원인 한동구를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당연히 롯데 자이언츠 팬이었던 엄마의 영향으로 역시 야구를 사랑하게 된 이 초등학생의 야구부 생활은, 어른들이 사회에서 겪는 슬픔과 기쁨, 비교와 배제를 일찍 경험하는 시간들로 채워집니다. 따로 사는 부산의 엄마와 서울의 아빠 사이는 그 물리적 거리 만큼, 동구에 대한 기대치에도 차이가 나고요. “엄마는 나더러 틀림없이 프로야구 선수가 될 거라고 한다. 아빠는 공연한 시간 낭비라며 지금이라도 야구부를 그만두라고 한다. 누가 맞는지 모르겠다. 나는 미래를 알 수가 없다.”(184쪽)
또한, 결과를 내야 하는 스포츠팀의 숙명은 초등학교 야구부 또한 비껴가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야구는 사랑하지만 실력은 부족한 친구 푸른이가 팀에서 나가기도 하고,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가기 어려운 실력자 영민이를 만나기도 합니다. 기존에 6학년을 중심으로 꾸리던 팀이 기록 중심의 선발 라인업으로 짜여지는 것도 받아들여야 했고요. 그렇게 결과가 거의 전부인 것 같은 야구팀 생활을 하면서 동구는 성장합니다. 결과 중심의 스포츠 세계를 바꿀 수도 없고, 바꿀 이유도 없는 것이죠.
그래도 작가는 한 가지 전복 포인트를 남겨놓습니다. 6학년으로서 마지막 경기를 마친 동구가 한 중학교로 스카우트 되는 이유로, 잘 던져서가 아니라 잘 질 줄 알았기 때문이라는 감독님의 메시지를 남겨놓은 것이죠. “패배가 확실한 상황에서 묵묵히 공을 던지는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한 아람중학교 감독님의 말을 들어볼까요?
“잘 지는 법을 알아야 된다. 질게 야구하는데,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헐타. 3할 치모 강타자다. 이대호도 열 번 중에 세 번 밖에 몬 친다 이 말이다. 삼성 라이온즈가 잘나갈 때도 이길 때 반, 질 때 반이다. 이기는 기야 다 잘하지. 그렇지만 야구하는 기 내내 지는 일이다. 잘 질 줄 알아야 된다. 인생은 토너먼트가 아니라 리그다, 리그.”(181쪽)
야구하는 게, 내내 지는 일이라뇨! (응원하는 스포츠팀을 가진 팬으로서) 이 얼마나 수긍이 가는 통찰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많은 건, 우리가 삶에서 매일 체험하는 진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우리는 이기는 방법을 아는 것만큼, 잘 지는 방법을 체득해야 합니다. 인생은 토너먼트가 아니라 리그, 그러니까 긴 여정이니까요.
다시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지난 시즌, 스카이워커스는 글쎄, 남자배구 7팀 중에 꼴찌인 7위를 했답니다. 팀 창단 이래 최악의 결과였죠. 이전에 5위를 했던 시즌에 감독이 교체된 적도 있었던 걸 생각하면, 팀을 해체해도 모자란 결과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런 시즌을 지내놓고서도, 감독은 교체되지 않았고 팀 선수들 또한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팬들은 화가 났지만요.) 지난 두 시즌을 리빌딩 시간으로 삼으며, 팀의 세대교체를 준비했고, 팀 분위기와 주전 선수를 서서히 바꿔나갔거든요. 물론 그 리빌딩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이번 시즌을 두고 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총 6라운드까지 진행하는 정규 시즌 중 이제 막 1라운드가 끝났지만, 분위기는 좋습니다. 부동의 우승 후보 대한항공 점보스와 OK금융그룹에게만 패하고, 4승 2패라는 준수한 성적표를 얻었거든요.
저는 이제 내년 4월까지 또 스카이워커스의 경기를 보며 일비일희할 예정입니다.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봄배구를 하면 기쁠 것 같습니다. 정규리그 우승을 하면 정말 행복할 것 같고요. 챔피언 결정전에 나가면, 우리 홈인 천안 유관순 체육관에 찾아가 볼 생각입니다. 챔피언이 되면 뭐,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충만한 행복을 느끼겠죠? 그런데 설혹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저는 앞으로 펼쳐질 6개월이 즐거울 것 같습니다. 간혹 패배할 수도 있고, 많은 순간 승리하겠지만, 1라운드에서 확인한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는 원팀으로 모두가 참여하는 신나는 배구를 보여주었거든요. 그렇게 원팀이 되어가기 위해 소통하고 뛰어다니며 땀 흘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과정은 그 자체로 제게 힘이 됩니다. 그런 모습으로 한 경기 한 경기 해나간다면, 이기는 경기와 잘 지는 경기 두 가지 중에 하나는 꼭 확인하게 될 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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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 [에밀앤폴에게 말걸기]
멋대로 내용을 요약해주지도, 억지로 감상의 방향을 결정해주지 않는 글들에 감사합니다. 특히나 '과월호 탐구'는 좋은 기획인 것 같아요! 마치 이 주의 칼럼을 읽는 듯한 20년 전의 글을 읽으니 세상이 조금씩은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아직은 내가 같이 목소리를 내야할 언어들이 있음을 느낍니다. 읽다보니 과월호탐구에서 다룬 필자가 같은 주제에 대해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궁금해지더라구요. 나중에 여력이 되면 인터뷰도..!😯 책을 대신 읽어줘서가 아니라 책을 읽고싶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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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류자들 잘 읽었습니다. 주제가 다양해서 시야가 트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에밀엔폴과 눈이 마주친 지금 저는 조금 더 다른 걸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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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뉴스레터를 읽고 든 생각을
자유롭게 나눠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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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큐레이터 에밀이 고심해서 고른 한 권의 책을 정성껏 포장해 보내드립니다. 그날의 느낌과 생각에 따라 주제를 골라보세요. 선물용으로도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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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그 이야기를 나누고 그에 걸맞은 책 처방이 필요하세요? 독서 생활 30년차 책방 북큐레이션 경력 5년차 에밀이 책을 추천하고, 그 이유를 정성스레 적어드립니다. 책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으시다면 선물 받는 분의 이야기를 적어주셔도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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