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를 마치는 날 등대는 공식적으로 위험에서 벗어났고 해안경비대는 등대의 수호자 조르지나에게 경의를 표하는 기념식을 마련했어요. 그 기념식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보낸 축하와 감사 편지가 낭독되었어요. 몬토크 등대는 이제 더이상 뱃길을 비추지는 않지만 역사적인 기념물로서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대요. 인생 끝 무렵 알츠하이머를 앓았던 조르지나는 현재 미국 대통령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토목공사에 대해서는 기술적인 부분까지 세세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고 해요. 조르지나가 이 공사에 온 삶을 다 걸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 같아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자녀가 없었던 조르지나 곁에는 리드 부부와 함께 공사를 도왔던 자원봉사자 가운데 한 사람이 간호사가 되어 그를 돌봤는데 그 간호사가 몬토크 등대에 조르지나를 마지막으로 데려간 날은 조르지나 리드 기념관이 문을 열던 날이었답니다. 92세의 나이에 떠난 그의 묘지에는 ‘빛의 수호자’라고 새겨졌고요.
저는 조르지나 이야기에 앞서, 17세기 아프리카 은동고와 마탐바 왕국의 왕이자 최고의 전략가 은징가나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비롯해 평생 무서운 역할만 맡았던 마거릿 해밀턴, 19세기 아파치 전사이자 주술가 로젠, 인종차별을 넘어 실천적 삶을 산 무용가이자 레지스탕스 활동가 조세핀 베이커, 이혼 후 50세부터 홀로 아프리카 탐험을 떠나 아프리카를 횡단한 최초의 여성이 된 탐험가 딜리아 에이클리에게도 끌렸지만 유독 조르지나 리드의 삶에 꽂혔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등대 지키기라는 미션을, 자기가 고안한 전문적 기술을 바탕으로, 15년 동안 끈기 있게 공사를 이끌어, 끝내 ‘빛의 수호자’라 일컬어진 이 지극히 평범하지만 비범한 여성에게요. 그리고 이 이야기를 평생 소장하고 싶어졌습니다. 마음에 힘을 잃었을 때마다 바지외의 간결한 그림체에 압축적으로 담긴 조르지나를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검색어나 인급동 영상, 주류 미디어에서는 도무지 들을 수 없는 등대지기 조르지나 리드의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고 싶어졌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졌고 사람보다 동물과의 소통에 능해 조롱을 받았지만 남들과 조금 다른 뇌로 사람들이 놓치는 수많은 것들을 이해했던 동물학자 탬플 그랜딘, 배우이자 발명가였지만 그의 외모와 배역에 따라 덧입혀진 이미지로 발명가로 인정받지 못했던 헤디 라마, 55세에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으로 하버드대에 거액을 기부하고 법의학 교육과정을 셀프 개설해 학생으로 들어가 강의를 듣고 나중에는 자기가 법의학 교육까지 했던, 범죄 현장 미니어처 제작자 프랜시스 글래스너 리(플렉스 제대로 할 줄 알았던 언니!)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어찌나 마음에 신이 나던지요. 그야말로 신명 나는 책이었습니다.
너무 신나 글이 길어졌네요.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미치도록 멋있고 이상한 언니들(1996년생 아프가니스탄 래퍼 소니타 알리자데 이야기도 있지만, 멋있으면 다 언니)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줘요. 당신이 진로를 고민하는 10대나 20대든, 인생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며 매 순간 벽에 부딪히는 30대나 40대든, 이제 난 뭘 할 수 있을까 질문하는 50대나 60대든, 70대든, 80대든, 90대든 아니 100세를 넘었어도 상관없어요. 이 책은, 힘 빠질 일만 경험하기 일쑤인 이 땅의 다양한 세대 여성들에게 드물게 힘을 불어넣어 줄 보물 같은 만화책이니까요.
어떤 책이 빌린 책에서 산 책으로 넘어온 이유를 참 길게도 썼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