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누구를 섭외할까 논의하며 주요하게 고려하는 건 강사의 저작 목록입니다. 배우의 필모그래피 같은 느낌으로 강사의 저작 목록을 보며 1차로 그의 주요 분야와 컬러를 가늠하죠. 차후 여러 정보와 섭외 가능성 등을 살펴보지만 1차 자료로서 그의 저작 목록은 중요합니다. 최종 리스트는 프로그램의 주제, 강사가 가장 이야기를 잘할 수 있는 분야(콘텐츠라고 말했다가 지웠습니다), 타깃층의 합을 본 후 대중성과 인지도를 기준으로 작성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누군가가 대중 강연의 강사로 섭외될 때, 그 누군가에게 ‘세월호’ 관련 저작 혹은 강연 경험이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이런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기 분야의 대중적 전문가라면 기획자들에게 중요한 강사일까요, 아니면 최종 목록에서는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운 까다로운 강사가 될까요? 예산의 출처와 강연 대상, 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최종 결정권자의 성향 등이 또 다른 중요 변수겠지만 그는 자기 전문성보다 ‘세월호’ 관련 이력이 더 크게 부각되어 배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세월호 10주기로, 10주기를 기념하는 일이 많은 만큼 그 이면에는 세월호를 더 예민하게 지우는 움직임도 활발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10주기니까 강연에서 세월호를 언급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으니 조심해야 해!
이런 걸 불이익받는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가 본인도 모르게 이런 이유로 배제된다면 저는 ‘굳이’ 그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고 싶어집니다. 작가는 이런 작품을 쓸 때, 어떤 결정에서 알게 모르게 배제될 수도 있다는 걸 계산했을까. 이걸 기록함으로 앞으로 작가 인생이 어떻게 되겠단 생각이 그를 두렵게 만들었을까. 혹은 그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이 간절한 마음으로 이 작품을 썼을까. 궁금증을 안고요.
김탁환 작가의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는 2014년에서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세월호를 둘러싼 이들이 더 잊히기 전에 기록해야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느껴진 소설집이었습니다. 그 절박함과 가까운 시차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마음은 섣부르거나 뜨겁지 않았습니다. 냉철하고 차분한 시선으로 꼼꼼하게 세월호 주변의 사람들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히지 않도록 기록해두었습니다.
기획자들이 (아마도 그의 책을 읽지도 않고) 그의 작품 시그니처를 세월호로 낙인찍었을 수도 있지만, 이 소설집은 여느 소설집과 다름없이 ‘사람’들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예기치 못한 사건 안에서 방황하고 자기만의 생존 방식을 모색하는 ‘그냥 사람’ 이야기였습니다. 제목이 왜 지당하게도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여야 했는지 헤아릴 수 있었어요. 소설 속 사람들은 그야말로 ‘그냥 사람’이었으니까요.
더 많은 학생을 살리지 못했다는 마음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일반인 생존자, 스무 명쯤 되는 아이들이 어깨동무하고 죽은 선실에 들어가 그들을 달래 한 명씩 품에 안고 올라 온 그날 이후 삶이 망가져 버린 민간 잠수사, 자기보다 열한 살밖에 많지 않았던 스물아홉 담임 선생님의 뒤를 따라 교사가 되어 11년 후 스물아홉에 교사로서 모교로 돌아온 생존 학생, 사진작가가 꿈이었던 희생 학생의 꿈을 어른 버전으로 재생시키는 사진작가, 희생된 학생 가족과 생존 학생을 연결하는 피해자지원점검과 조사관까지.
다만 그 ‘그냥 사람’들이 세월호 안팎을 경유한 사람들이었다는 게 ‘문제’일까요.
소설집을 다 읽고는 처음에 제가 가졌던 궁금증이 초라해졌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작가의 작품만이 오롯이 남았으니까요. 소설가로서 그는 보았고 품었고 해석했고 썼습니다. 여느 소설가들이 그러는 것처럼요. 소설가는 소설가의 방식으로 기억했고 큰 슬픔과 연대했고 세월호와 독자를 연결했습니다. 그뿐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기도 했습니다. 소설가 덕에 세월호 곁에 있던 사람들의 이후 삶이 어땠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들과 더 깊은 마음의 세계에서 교감할 수 있어 고마우면서도 슬펐습니다. 무엇보다 “지고 싶지” 않아졌습니다(196쪽). 망각과 조롱과 의도적 배제에 맞서서요.
소설집에 실린 마지막 작품 ‘소소한 기쁨’은 두고두고 꺼내 볼 삶의 이정표 같은 작품이었어요. 세월호 안팎의 이야기를 쓰는 과정에서 소설가의 고뇌가 무엇이었는지, 그 고뇌를 어떻게 편집자와 앞서간 스승과 함께 풀어나가는지, 편집자의 시점에서 보여준다는 게 참신했던 아름다운 작품이에요. 그에게 나아갈 길을 보여준 스승은 누구였을까요? 저 또한 문득 다시 이 책의 출판사를 확인하고 소설 속에 형상화된 분이 누구인지 깨달으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저 또한 많이 그리운 분이었거든요. 마지막에 보물처럼 숨은 이 작품까지 꼭 가닿는 분들이 많기를.
소설가가 소설가의 일을 함으로, 한 번의 강연에 큰 강사비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배제된다면, 내가 그의 독자가 되고 싶단 생각으로 시작한 독서였는데 책을 다 읽고 알았습니다. 혹여나 그가 그도 모르게 배제된 일이 있었다면 이미 그런 일보다 더 넘치는 숫자의 독자 연대와 새로운 친구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으리란 걸요. 난 그 연대에 오히려 너무 늦게 합류한 게으른 독자였다는 걸요. 어떤 프로그램에 어떤 강사를 섭외하는 일에 이런저런 정치적 고려를 하는 것만큼, 어떤 책을 골라 읽고 어떤 책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일은 이토록 정치적인 행위란 것도.
아, 그리고 이 책이야말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 “이건 사야 해!”하는 그런 책이었어요. 어떤 책은 빌린 책으로 완독 후 작가와 출판사를 향한 지지와 리스펙으로 사기도 하는데 이 책은 그런 이유로 ‘산 책’의 영역으로 옮겨온 친구 중 하나입니다. 2017년 당시에 만나지 못한 걸 미안해하면서.
*새 책은 사진 촬영 후 도착해, 실제로 읽은 책이자 빌린 책으로 촬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