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이맘때쯤, 나는 리스보아의 산타 아폴로니아 기차역(Estação Ferroviária de Santa Apolónia)에 내려 택시를 기다리면서 군밤 파는 아저씨를 보고 있었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역이자 신고전주의 양식의 빨간 벽이 아늑함을 선사하던 곳. 오래전, 산타 아폴로니아 수도원이 있던 자리로 그 이름을 이어받아 순교자의 이름을 갖게 된 기차역. 리스보아에서 가장 오래된 알파마(Alfama) 지구 테주 강변에 자리해 유럽 곳곳에서 들어오는 여행객들이 거쳐 가는 장소. 이곳에서 여행의 2/3지점을 맞았다.
산타 아폴로니아 역에 다시 도착하니 며칠 전 이 도시를 떠나기 전 보았던 리스보아의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내 마음속, 리스보아의 시그니처였던 ‘빨랫줄에 걸린 빨래들’. 여기에 군밤 파는 아저씨까지 더해지니 이 지점에서 다시 한번 느껴버리는 리스보아 감수성. 이곳은 1990년대, 서울 혹은 어느 지역의 도시 같아. 유럽 거리에서 군밤 파는 상인들을 이렇게 자주 보게 될 줄이야.
리스본의 랜드마크는 코메르시우 광장, 제로니무스 수도원, 벨렝탑, 산타루치아 전망대일지 몰라도 “이곳이 리스보아다!”라고 하는 상징은 빨랫줄에 걸린 빨래가 보여주는 노스탤지어와 소박한 생활 방식, 도시 곳곳을 수놓은 아줄레주 장식과 포르투갈 특유의 문양이 새겨진 타일 돌바닥이라고 밀어본다. 내적 상징은 페르난두 페소아라고 믿어보고.
온 장소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축하하고 기념하는 하나의 커다란 연회장 같았던 도시를 떠나 크리스마스 분위기는커녕 한 해를 떠나보내는 겨울의 연말 느낌조차 매끈하게 지워버린 서울에 도착하니 지난 열이틀 간의 리스보아-포르투 여행이 더더욱 여러 편의 꿈처럼 느껴진다. 그 꿈이 현실로 흩어지기 전에 몇 편의 글로 리스보아-포르투 여행기를 남겨보고 싶어졌다. 14시간 40분을 들여 날아간 그 먼 곳의 이야기를.
(‘리스본(Lisbon)’이라는 영어식 표기가 있지만 ‘리스보아(Lisboa)’라는 포르투갈 현지어로 표기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