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앤폴T
리스보아-포르투 여행기2
크리스마스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
|
|
⌂
여행 마지막 날 밤, 페소아가 자주 갔다던 ‘카페 브라질리아(A Brasileira do Chiado)’에 다녀왔다. 일정 내내 동선이 나오지 않아 결국 들르지 못하는 건가 싶었는데, 끝내 아쉬운 마음이 들어 피곤한 몸을 일으켜 마지막 밤에 길을 나섰다. 피곤하다고 이 길에 나서지 않았다면 어쩔뻔했나. 카페를 찾아가는 길에, 카페보다 더 마음에 뚜렷하게 남은, 뜻밖의 선물을 두 가지나 받았으므로.
|
|
|
늦은 밤은 아니었지만, 주말에 접어든 도시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여행한 포르투갈의 두 도시, 리스보아와 포르투는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충만했고 주말이 되니 그 분위기가 더욱 들썩거렸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지금은 그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렀겠지?) 카페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선 토요일 밤,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를 걸으며 시아두(Chiado) 지구에 이르렀을 때 첫 번째 선물을 만났다.
리스보아에서 가장 활기 넘쳤던 거리 ‘후아 가헤트(Rua Garrett)’의 오래된 건물에 들어선 쇼핑센터에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며 흐르던 미디어 파사드. 그 파사드를 감상하며 촬영하는 세계 각지의 여행객과 시민들, 루돌프 뿔 모자와 산타 모자를 쓰고 이 분위기를 즐기는 가족들 모두 흥겨워 보였다. 그들 사이에 있다 보니 실로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손으로 만들어 보내던 시절의 정서가 내 마음에도 넘실거렸다. 크리스마스(문화)에 냉담한 태도를 보이던 서울의 스크루지 마음에 스크루지의 조카 프레드가 말한 크리스마스가 마음에 들어왔달까. |
|
|
“세상에는 굳이 그 덕을 보지 않아도 그냥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참 많아요. 크리스마스가 특히 그렇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요, 크리스마스가 갖는 어느 한 가지 의미를 따로 떼 놓고 생각할 수 있다고 치고요, 크리스마스라는 신성한 이름이나 크리스마스의 유래에서 절로 우러나는 경외심은 젖혀 놓고라도 저는 크리스마스가 참 좋은 때이고 친절과 용서와 자비와 기쁨이 가득한 때라고 생각해 왔어요. 그리고 1년의 수많은 날 가운데에서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닫혔던 마음을 터놓는 때는 이때뿐이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나와는 다른 길을 가는 별종이라고 여기지 않고 모든 인생의 종착지인 무덤까지 같이 가는 길동무라고 여기는 때도, 제가 아는 한은, 이때뿐이에요.”
_찰스 디킨스 글, 김난령 옮김, 『크리스마스 캐럴』, 시공주니어, 18-19쪽. |
|
|
모든 사람이 한마음이 되어 닫혔던 마음을 터놓고 길동무라고 여기는 때. 이상하게도 리스보아의 12월, 가헤트 거리에는 프레드가 말한 크리스마스가 흐르고 있었다. 그 거리에 서서 인파에 밀려 길을 걷던 내게, 같이 걷던 폴이 말해준다. 길 건너편에 베르트랑 서점이 있다고! 그 말을 듣고 건너편을 쳐다보니 ‘LIVRARIA BERTRAND’ 간판이(!!!) 이것은 또 다른 선물이었다. 이 또한 꼭 가보고 싶었으나 여행 동선에 넣을 수 없었던 바로 그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베르트랑이 아니던가! 책과 서점에 환장하는 나는 인파를 헤집고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저기, 잠깐 들렀다 가자고 외치며. |
|
|
무려 1732년에 문을 연 이 서점은 긴 터널 형태로 이어진 깊은 공간에서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만나는 첫 공간에는, 1998년 포르투갈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주제 사라마구(José de Sousa Saramago)의 책들이 벽면 가득 여러 버전으로 채워져 있다. 사라마구는 그들의 문학적 자부심인 걸까. 리스보아 곳곳에서는 페소아 만큼 사라마구의 흔적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 공간을 지나 터널 같은 길을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양편에 주제별로 책이 배열되어 있고 간혹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만날 수 있었다. 나갈 때는 다시 그 터널의 반대편으로 걸어 나가야 했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과 부딪치고 마주치는 건 필수. 이 터널을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던 건 통로마다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던 이유.
서점 역시 그 명성답게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 와중에 가까스로 페소아의 작은 책 한 권을 골라 계산하려고 하는데 직원이 묻는다. 베르트랑 서점 스탬프를 책에 찍겠냐고. absolutely. 당연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책에 스탬프 찍는 걸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긴 하리라. 다음으로 던지는 질문. English or Portuguese? 이 또한 나의 대답은 absolutely Portuguese. 포르투갈어로 인쇄된 페소아를 사고 싶었고 한강을 사고 싶었으므로 스탬프도 당연히 그래야지! |
|
|
마침, 서점 안에는 ‘Prémio Nobel(노벨문학상)’ 코너가 있었는데 토마스 만, 존 스타인벡, 토니 모리슨과 나란히 있던 한강 작가님 책을 보는 일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는데 이는 단순히 나와 같은 한국인이 같은 모국어로 글을 쓰고 상을 받아서 생긴 게 아니었다. 그 뭉클함은, 수상 작가가 한강 작가님이어서, 역사와 현실에 뿌리박은 채 폭력을 직시하면서도 사랑을 이야기하고 사람을 품고 고통 속에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한강 작가님이어서, 그 한강 작가님이 바라보는 세계가 노벨문학상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와 소통하게 된 게 정말 기쁘고 아름다워서 생겨난 마음이었다. |
|
|
갈 길이 바쁘다. 오래 머무르며 음미하고 싶었던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베르트랑을 나서며 우리의 행선지 ‘카페 브라질리아’로 향한다. |
|
|
이번 뉴스레터를 읽고 든 생각을
자유롭게 나눠주세요 ✍🏻😇🤓 |
|
|
북큐레이터 에밀이 고심해서 고른 한 권의 책을 정성껏 포장해 보내드립니다. 그날의 느낌과 생각에 따라 주제를 골라보세요. 선물용으로도 좋습니다. |
|
|
내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그 이야기를 나누고 그에 걸맞은 책 처방이 필요하세요? 독서 생활 30년차 책방 북큐레이션 경력 5년차 에밀이 책을 추천하고, 그 이유를 정성스레 적어드립니다. 책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으시다면 선물 받는 분의 이야기를 적어주셔도 좋아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