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윤 작가의 <밤은 내가 가질게>는 일종의 연작소설입니다. ‘연작소설’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 안에 담긴 일곱 편의 단편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어떤 이야기에서 주인공 화자였다가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잠깐 등장하는 엑스트라 역할을 하거든요. 마치 우리가 인생의 어느 상황에서는 주인공이었다가 어떤 정황에서는 조연 혹은 엑스트라인 것처럼요. 책의 반 정도 분량을 읽다가 작가가 은밀하게 숨겨둔 이런 장치를 발견하자 이상하게 독서 속도에 가속이 붙었습니다. 작가님이 숨겨 놓은 퍼즐을 찾는 재미, 그 퍼즐을 찾아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 미스터리를 읽는 듯 다음 페이지가 자꾸 궁금해지는 신비. 이 책은 실로 오랜만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은 책이었어요. 제 인생 질문이기도 한 주제-‘폭력 문제’-가 이 소설집 전반에 흐르고 있어 더더욱 몰입해서 읽은 것 같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니나>(문학동네, 2009)의 첫 문장이 생각나도록 이 단편집에서는 폭력의 여러 형태를 나름나름의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나름나름의 폭력이 얽히고설켜 있는 가운데 그 사건들 속에서 폭력 자체의 ‘이슈’에 집중하기보다 폭력과 그로 인한 죽음 곁에 남은 ‘사람’을 들여다보는 소설가 안보윤의 시선. 이를테면, ‘완전한 사과’에서는 폭력 가해자의 동생이 등장해 가해자의 동생으로 사는 삶의 복잡한 내면을 보여줍니다. ‘밤은 내가 가질게’에는 피해자 혹은 약자라고 규정당하기 쉬운, 생존자 ‘미도’가 늙고 병든 유기견을 기꺼이 품으며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선의 형상으로 드러나기도 하고요. 우리가 소위 ‘피해자’라고 부르는 누군가가 어떤 삶의 정황에서는 가장 용기 있고 생기 넘치는 생명의 책임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저 또한 가장 오래 펼쳐두었던 페이지인데, 그래서인지 이 장면에서 미도가 속삭인 한마디는 소설집의 표제가 됩니다.
사기 및 폭력 피해자이며 가족들에게는 짐이었던, 아니, 살아남아 그만의 고유한 힘을 품은 ‘생존자’인 미도가 늙고 병든 유기견 ‘밤톨’의 귀에 “밤은 내가 가질게”라고 속삭이며 개의 이름이 ‘토리’로 바뀌는 그 장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은 책이었는데(그런 일도 있답니다. 이런 걸 흡입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사실 이 책은 보편적인 흡입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저의 마음을 잡아끄는 주제들이었기에 온통 사로잡혔던 것 같아요. 살면서 한 번이라도 이런 독서 경험을 해보는 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이 장면에서만큼은 읽기를 멈추고 잠깐 허공을 봤어요. 누군가는 모자란 아이라고 불렀던 미도, 사기당하고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가족도 버거워하는 우리의 미도, 하지만 이 책에서 기꺼이 ‘밤’을 가지는 존재는 다름 아닌 바로 ‘미도’.
유일하게 그 이름이 단편 제목에 호명된 ‘미도’는 어쩌면 이 책의 일곱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일 거예요. 한 번, 일곱 편의 단편을 읽으며 미도가 어디에서 언급되는지, 어디에서 등장하는지 찾아보세요. 그렇게 세심하게 읽고 나서야 ‘우리의 미도’가 주변에 늘 있었다는 걸 알아채고 문을 열고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요. ‘바늘 끝에서 몇 명의 천사가’의 유영처럼.
내 곁의 사람 혹은 어떤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처해 있는 맥락과 정황을 들여다보려는 가만함보다는 내 입장에 맞춰 재단하고 성급하게 표현하는 게 익숙한 시절, 사건 ‘곁’에 살아남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어떤 사람의 내면 혹은 사건의 정황을 들여다보는 소설가의 시선은 소중합니다. 저도 그 시선에 대해 일 년째 생각 중입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오해하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순간 왜곡해서 바라보고 편파적인 시야에 갇혀 있는지 깨닫지도 못한 채 쉽게 판단하고 말하는 습관들. 내가 ‘정의’라고 생각하며 내뱉은 말과 어떤 태도가 누군가를 배제할 수도 있고 막다른 곳으로 몰아갈 수도 있을 가능성을, 내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엉거주춤한 지점에 얼마나 애매하게 걸쳐져 있는 복잡한 인간인지 생각해봅니다.
불행이나 폭력은, 아니 현실은 복잡합니다. 그래서 상황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감수성, 무엇보다 지성에 항상 목마른가 봅니다. 하여, 이 소설은 은밀하게 숨겨진 장치와 얽히고설킨 서사 구조를 생각하며 읽어내게 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생각’할 것을 권하고 어렵고 지난한 길을 거쳐야만 복잡한 현실과 사람의 마음을 알아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같아요.
아, 그러고보니 이 소설집의 해설은 정여울 작가님이 쓰셨네요. 이런 우연이.ㅎ (지난 뉴스레터 ‘밤은 내가 가질게, 내가 가지고 말 거야1’ 참고)
밤을 모아둔 책 코너가 재밌네요. 밤은 애매모호한 단어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빛이 또렷이 보이는 배경이 되는 밤이 생각납니다.
밤을 갖겠다는 선언은 언젠가 빛을 갖겠다는 선언으로 들립니다.
저도 정여울 작가님처럼 밤의 얼굴을 지니고 싶네요.
드물게 ‘[에밀앤폴]에게 말 걸기’에 보석 같은 글을 남겨주시는 구독자분들이 계십니다. 지난 3월에 보내주신 이 글을 읽고 한참 생각했는데요. ‘밤’을 갖겠다는 선언이 언젠가 ‘빛’을 갖겠다는 선언으로 들리신다는 말씀에 정말 마음이 통했다고 느꼈습니다. 우리의 ‘미도’가 ‘밤톨’의 ‘밤’을 가지며 그 자신이 한 생명체의 빛이 됨으로써 빛을 가졌으니까요.
‘밤의 에밀’에 응답해주시고 답장 보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더 골몰하여 읽고 더 진실하게 쓰며 더 부지런히 나누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습니다.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그 사이에 저의 몇천 권의 책들이 이사를 했고 ‘밤의 책장’은 조금 흩어지게 되었어요. 그대신 새로운 책장 코너들이 생겼는데 다음엔 그 책장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는 여성으로서 읽는 책들의 이야기입니다. 여전히 ‘밤의 에밀’로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