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앤폴T
리스보아-포르투 여행기3
백 년 전 여행안내서가 유효한 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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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소아가 잡지 <오르페우> 창간을 준비하며 예술가 친구들과 교류했던 장소인 카페 브라질리아. 여행지로 가던 비행기에서 완독한 김한민 작가의 『페소아』(아르테, 2018)에 따르면 우리의 행선지였던 ‘A Brasileira do Chiado’는 본점이며 한때 페소아도 왕래했었지만, 페소아가 주로 찾았던 카페 브라질리아는 호시우 광장의 분점이었다고 한다. 오래된 건물이 그대로 살아있는 도시 리스보아지만 그 분점은 현재 사라지고 없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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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카페 브라질리아 본점에는 페소아 동상이 있다. 사람이 북적이는 주말 밤이었기에 관광객이 많아, 줄을 서서 조금 기다린 후에 페소아와 마주할 수 있었다. 단지 그 동상과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싶어 그곳에 간 건 아니지만 또 이렇게나마 페소아를 기념하고 싶은 마음.
비록 그가 자주 찾은 분점은 아니지만, 한때나마 페소아가 이곳에 앉아 동시대 작가들과 잡지를 기획하고 문학 이야기를 나눴을 장면을 상상하며 그 숨결을 느껴보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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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카페하우스의 테라스에서 나는 가물거리는 인생을 바라본다. 이 아래 광장에 한꺼번에 엉켜 있는 삶의 폭넓은 다양성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내 삶의 모습만은 분명히 볼 수 있다. 취기가 막 오르는 것처럼 약간 몽롱해질 때, 사물의 영혼이 베일을 벗는다. 행인들의 발걸음 소리와 통제된 과격함의 몸짓들. 삶이 내 외부에서 그렇듯 가시적이며 일관된 모습으로 지나가고 있다. 바로 이 순간 내 감각은 마비되고 사물이 다르게 보인다. 내 느낌은 잘못되었다. 혼돈이면서도 명료하다. 나는 상상의 콘도르처럼 나른하게 날개를 펼친다.
_『불안의 서』(배수아 역, 봄날의책,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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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카페에 왔을 때는 이렇게 행인들을 바라보며 관찰했을 페소아를 따라, 그가 자기 삶의 모습을 비추어본 테라스 자리에 따라 앉아본다. 리스보아식 에스프레소인 비카(Bica d’A Brasileira, a Original)를 주문할까도 했지만, 밤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습관이 있어 조금 타협(?)해 라떼 메뉴인 ‘Galão d’A Brasileira’를 시켰다. 그래도 카페 이름이 붙은 음료가 시그니처겠지? 라고 믿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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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들고 간 책은 『페소아의 리스본』(박소현 역, 안그라픽스, 2017)이었다. 전날 관람했던 ‘베라르도 미술관(The Museu Colecção Berardo)’ 안에 있던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의 원서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샀었고, 브라질리아에는 꼭 이 책 두 권을 들고 오고 싶었다. 여행을 혐오했던 페소아가 쓴 리스보아 여행 안내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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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나는 구토를 느낀다. 나는 내가 한 번도 보지 않은 것들을 이미 모두 보았다. 나는 내가 아직 보지 않은 것들을 이미 모두 보았다.
_『불안의 서』(배수아 역, 봄날의책,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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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구토를 느낀 페소아였지만, 포르투갈이 스페인의 한 지역인 줄로만 알았던 영국인을 만나 충격을 받고 영어로 이 여행책을 썼다니, 페소아의 이런 모순이 페소아답다고 생각했다. 어떤 감정과 사건 속에서도 세상 쿨할 것 같은 페소아에게 이런 민족주의적 면모가 있다니, 참 알 수 없다는 생각도 하면서.
여행을 준비하며 탐독했던 이 특별한 책을 원서로 읽어보니 번역서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리스보아를 ‘일곱 언덕’으로 먼저 정의 내리고 시작하는 페소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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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seven hills, which are as many points of observation whence the most magnificent panoramas may be enjoyed, the vast irregular and many-coloured mass of houses that constitute Lisbon is scattered.
_LISBOA : WHAT THE TOURIST SHOULD SEE, FERNANDO PDSSOA.
눈부시게 아름다운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쭉 늘어선 일곱 언덕 위로, 들쭉날쭉 튀어나온 다채로운 건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리스본이라는 도시를 이룬다.
_『페소아의 리스본』,(박소현 역, 안그라픽스,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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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판된 1925년으로부터 정확히 백 년이 지났지만, 리스보아는 백 년 전 페소아가 소개한 모습 그대로 여전히 어느 언덕에 올라가 내려다보아도 그 불규칙한 다채로움으로 여행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페소아가 안내한 장소들-테주강을 향해 열려 있는 코메르시우 광장, 포르투갈의 국민 시인 카몽이스 동상이 서 있는 루이스 드 카몽이스 광장, 폼발 후작 광장에서 끝나는 리베르다드 대로와 “테주강과 리스본 전체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일품”인 상 조르즈 성까지 고스란히 남아 리스보아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속삭이고 있다.
이건 마치 1920년대 경성을 묘사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나 염상섭의 ‘만세전’을 읽고 지금의 서울 풍경을 조망하는 것 같은 일이니, 리스보아가 얼마나 노스탤지어로 가득한 도시인지 느낄 수 있겠다. 그러니까, 백 년 전 여행안내서가 유효한 도시가 리스보아인 것.
1925년의 페소아가 리스보아 관광객이 꼭 봐야 할 것들로 리스트업한 장소들이 2025년 관광객에게도 유효하다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그렇게 페소아 안내를 받으며 카페와 거리를 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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