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은 언제나 신비롭습니다. 12월과 1월 사이에 ‘시간성’에 관한 사색의 마음이 짙어지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유독 시간 의식에 민감했던 김종길 시인의 시가 떠오르나 봅니다. 그 유명한 ‘성탄제’에도 제목부터 시간성이 반영되어 있고, 오늘 가져온 시 ‘설날 아침에’에도담담하게 시간성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읽은 <천지현황>이라는 이 절판 시집에 새해와 관련한 시만 몇 편이 실려있는지 모릅니다. 시인에게 시간의 흐름, 그러니까 계절 감각은 곧 시적 사유의 핵심입니다.
그런 시인이 “새해는 그런대로 따뜻하게 맞을 일이다”라고 말을 건네며 그려내는 새해 이미지는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입니다. 이 원시적 비유 앞에서 곰곰이 그 의미를 헤아려봅니다. 어린것들 잇몸에 이빨이 돋아난다는 것은 그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표이자, 앞으로 그 이빨로 음식을 씹어 넘길 수 있으리라는 약속이겠죠. 그러니 그 고운 이빨은 반가운 인사 같은 것 아니었을까요? 유가적 전통 질서를 추구했던 시인의 정신적 기반을 생각하면 시인은 어린것들 잇몸에 고운 이빨이 돋아나는 것을 보며 전통을 계승할 자손이 건강하게 성장한다는 마음에 반가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생각을 조금 비틀어 내 뜻대로 해석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대를 이을 고운 이빨이 아니라 작년보다 더 세고 단단한 것을 씹을 수 있는 새로운 이빨이 돋듯 새해를 맞아보고 싶어진 것이죠. 그렇게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한없이 추상적인 시간성 속에서 오늘을 살아갈 그림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어린것들이 태어나 몇 개월이 지나면 그들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고운 이빨이 돋아나며 자라는 것처럼, 시인을 따라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을 어떤 세계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새해를 맞아봅니다.
뉴스레터가 좋아서 다시 읽었는데 새롭게 다가오네요. 특히 박서원 시인의 "안개가 낄 적에는 모든 길은 하늘로 향하네"라는 구절이 와 닿아요. 최근 영화 <헤어질 결심>의 낭독 모임에 참여했는데, 전 이 영화가 안개가 자욱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현대인은 누구나 자신만의 안개를 갖고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영화 속 해준이 눈에 안약을 넣듯 우리가 트인 시야를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지요. 혹 사적 언어의 발견이 그걸 가능하게 할 수도 있을까요? 바로 '여자 당디' 같은.